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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새 책, 이렇게 봐도 됩니까?

함께사는 이야기 2018. 5. 28. 10:06

책 표지 구기고, 사진 찍고, 시끄럽게 통화하고..

 

"제발 지켜주세요, 책티켓"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진열대. 앞쪽에 비치된 일부 책은 험하게 읽은

일부 손님 탓에 표지 등이 구부러져 있다.>

 

지난 22일 낮 12시30분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진열대의 책들

중 절반은 표지가 위쪽으로 떠 있었다.

일부는 책 아래에 끼우는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일부 책 페이지가 접힌 것도 있었다.

손님 여럿이 돌아가며 과하게 구부려서 보거나 함부로 본 뒤 놓고 간 탓이다.

 

같은 서점의 그림·드로잉·일러스트레이트 관련 서적 판매대.

이곳 한쪽 귀퉁이에는 뜬금 없이 일본어 시험인 JLPT 학습서적 등이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누군가 다른 판매대에서 책을 가져온 뒤 놓고가기 편한대로

내버려둔 것이다. '보신 책은 제자리에 놔달라'는 안내 문구가 무색했다.

 

'책티켓'(서점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부 손님 때문에 서점이

골치를 앓고 있다. 책을 살 것도 아니면서 험하게 보거나 손때를 묻히고 필요한

부분만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 이들이다.

다수가 누려야 할 독서공간에서 전화 통화를 시끄럽게 하거나 음식물을 먹고,

아예 대놓고 잠을 자는 유형도 있다.

 

가장 기본적인 책티켓은 책을 소중히 다루는 것이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진열대에 누군가 아무렇게나 놓고 간 일본어 학습 서적이 놓여 있다.>

 

직장인 유소영씨(27)는 책을 구입할 때 위쪽에 놓인 것은 반드시 거른다.

 

새 책인데도 대부분 구겨진 게 많기 때문. 그래서 맨 위에 놓인 책 말고 그 아래쪽에

놓인 빳빳한 책을 집어든다. 그러면서 유씨는 "가끔 보면 접혀 있거나 음료수가

묻어 있어 이걸 팔 수 있을까 싶은 책들도 있다"며 "가급적 필요한 부분만

깨끗하게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서모씨(25)는 인적성검사 서적을 사왔다가 다른 책으로 교환한

경험이 있다. 누군가 볼펜으로 문제를 푼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페이지가 접혀 있기도 했다. 서씨는 "아무리 그래도 문제를 푸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며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제멋대로 책을 꽂아놓는 이도 다수다. 주부 최지연씨(37)는 지난 2월 서점에서

소설책을 구입하느라 곤혹을 치렀다. 분명 재고가 있다고 해서 판매대로 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책이 없었기 때문. 직원에게 문의하니 '누군가 책을 보고 제자리에

놓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최씨는 별 수 없이 예약 신청을 한 뒤에야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이 같은 손님들 때문에 서점 직원들도 난감하다. 서울 영풍문고 관계자는 "음료를

책에다 엎고 가거나 구절이 마음에 든다고 책을 뜯어가기도 한다. 그런 책들은

팔 수가 없다"며 "주의를 드리지만 일일이 커버하기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진열대에 누군가 먹다 남기고 간 물통이 놓여 있다.>

서점이 '도서관화'되면서 지켜야 할 책티켓도 늘었다.

 

우선 정숙하는 것이 필수다.

 

직장인 문재용씨(36)는 지난달 서울 종로의 한 대형서점을 찾았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죽소파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데

근처서 한 노인이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했다.

통화는 무려 20분 넘게 이어졌다. 주위 사람들이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문씨는 "서점도 도서관처럼 조용히 책을 보는 분위기인데,

진상손님 때문에 신경이 무척 거슬렸다"고 꼬집었다.

 

대학생 김모씨(22)는 지난 3월 서점에서 '찰칵찰칵' 소리를 내는 다른 손님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여행책을 한 권 가져와서는 양쪽으로 한껏 펼친 뒤 사진을 찍고

있었다. 김씨는 "사실상 지식을 절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그것도 잘못됐지만 소음을 내는 게 더 짜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님들 스스로 '책티켓'을 지키기를 기대하는 것 외엔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

 

서울 강남 소재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전에 잠자는 손님에게 '여기서 자면

안된다'고 했더니 외려 큰소리 내고 난리를 쳤다"며 "직원 입장에서는

진상손님을 다룰 방법이 마땅찮다. 알아서 인식이 나아지길 바랄 뿐"이라고

토로했다.

 

 

<영풍문고서 안내하는 '책티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