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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선 소위 권력 가진 자들, 돈 있는 자들, 지위 있는 자들.. 등

그들과 대비되는 인물, 유한양행 창립자 고유일한 박사님.

 

생전에도 생후에도 그분의 발자취는 참으로 맑고 투명해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으며,

최근 한 방송에서 다시 한번 조명된 고유일한 박사님의일화.

이것이야말로 말로만 듣던 '노블리스 오블리주'구나.

 

 

 

<파이낸셜뉴스 발췌>>>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사원들 주인으로 우대.. 정치자금 요청 거절

 

 

 

 

유한양행 故 유일한 박사에 대한 미담이 1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뤄져 화제다.

유일한 박사는 매사에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으로, 외국을 오가는 비행기표는 물론 모든 비용을 자신의 주식배당금에서 공제하도록 했고 공금을 쓰지 않았다.

유일한 박사는 사원들을 '주인'으로 우대, 1930년대부터 부천 소사 공장 부지에 종업원들을 위한 독신자 기숙사, 집회소, 운동장, 양어장, 수영장들을 만들고 주식을 공개하며 사원 지주제도 도입했다.

 



유일한 박사는 병든 동포들을 구해야한다며 의약품업을 시작했고, 벌어들인 돈은 교육과 공익 사업에 투자했다. 해방 뒤 유일한은 이승만의 상공부 장관 입각 요청도 거부하고, 정치자금 요청에도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일한 박사의 이 같은 행동은 '갑질논란'이 반복되는 현 사회에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스포츠경향 발췌>

 

‘그에게 갑질은 없었다’ 유한양행 창업주 故 유일한 박사 이야기

 

 

10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갑질 논란’과는 정반대의 사례가 공개됐다. 바로 유한양행의 창업주 故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다.

백화점 모녀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등 최근 ‘갑질’로 논란이 됐던 이들과 반대되는 사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

세상에 공개된 그의 유언장은 온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첫째, 손녀 유일림(아들 일선씨의 딸)에게는 대학 졸업시까지 학자금 1만달러를 준다. 둘째, 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의 땅 5000평을 준다. 이 땅은 울타리를 치지 말고 유한동산으로 꾸며라. 셋째, 내 소유주식 전부는 교육원조신탁기금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호미리는 딸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 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 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일반인들로서는 생각도 못할 유언장을 남긴 유일한 박사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사업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민족자본을 축적해 이 사회에 기여할 길을 계속 찾아 실천했다.

유일한 박사는 1895년 평양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국권 침탈의 시대 속에서 아들을 ‘민족을 살릴 큰 인물’로 키우고자 아내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유 박사는 9세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고, 고학으로 미시간주립대에서 학사학위를,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상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3년간 법학을 전공했다.

미국 생활 초기, 3년여간의 네브래스카 한인소년병학교 시절에 싹튼 민족의식은 이후 독립운동의 원천이자 기업 경영의 지표로도 작용했다. 대학졸업 후 잠시 제너럴일렉트릭에 입사했지만 힘없는 나라를 살리는 길은 사업 밖에 없다는 생각에 대학동창과 함께 숙주나물 통조림 업체인 라초이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를 운영하며 어느 정도 사업자금이 마련되자 유 박사는 1926년 고국으로 향했다. 당시의 열악한 의료상황을 지켜보며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39년엔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했고, 69년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면서는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조권순에게 사장직을 물려줬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봉사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인재를 양성하여 사회에 배출하며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첫째, 기업을 키워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둘째, 성실하게 납세하며 셋째, 남은 것은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

비문에 씌어진 이 기업철학을 그는 평생 실천했지만, 현재의 우리 사회는 갑질 논랑에 시끄럽기만 하다.

 

딸 재라씨는 91년 63세로 타계하며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에 자신의 전 재산을 더한 205억원을 사회에 기부하면서 2대에 걸친 귀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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